고요한 시간

세계인과 기독교

사이 (SA-E) 2022. 1. 25. 11:00
내가 세계인이라고 하면 단순한 개념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전 세계인이 한국인이라고 하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면 그것은 어떤 배타적 권력이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인이 미국인이라고 해보자. 다만 현재 미국인이 아닌 다른 이들은 미국 소속의 외국인 노동자라는 의미의 미국인이다.
그렇다면 어떤 불합리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인이 예멘인이라고 해보자. 예멘 바깥은 예멘의 외국인 노동자로 소속된다.
미국의 경우와 달리 지배 체제에 대한 저항의 연대가 왜 의무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예멘을 배우고 친교를 나눠야 하는 입장이지, 우리가 예멘을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예멘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계인은 미국인이 아니다. 세계인은 한국인이 아니다. 오히려 예멘인이다.
 
국가란 것이 일종의 지역 감정 일 수는 있겠으나 그 이상이 된다면 거기엔 배타적 권력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종교다. 그것이 시장의 원리이기 때문에 배타적 권력을 선한 것으로 숭배한다.
기독교도 종교다. 그러나 기독교만 유일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특성은 약자에 대한 기울어짐에 있다. 그 기울어짐은 우주적인 동시에 인격적인 것이다. 곧 기독교란 내가 예멘의 외국인 노동자와 같다고 생각하도록 돕는 힘을 숭배하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개념은 단순히 국가란 개념보다 더 근본적이다.
인간이란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유기체적 존재라는 것은, 나와 타자, 모든 인간과 비인간의 자연과 나와 타자, 모든 인간과 비인간 노동의 유기체적 조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예멘인 인것처럼, 오염된 땅이 파괴된 숲이 또한 인간이다.
기독교는 단순히 위에서 자연에 대해 시혜를 배풀거나, 자연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돼지가 착취 당할 때, 우리는 착취 당하는 돼지 밑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도록 돕는 힘을 숭배하는 것이 기독교다.
온 우주의 신이 신의 인격을 가지고 바로 지금여기에서 그 힘을 위해 도살장에 내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