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으로 나는 것은 종교다. 영으로 나는 것은 신앙이다.
간디가 말하고자 한 것은 육이 아닌 영이다. 나의 길을 확신하는 것은 육적인 종교일 뿐이다. 영에서는 확신이 존재할 수 없다. 다만 동시에 확신 되는 것이다.
육적 세례는 할례나 다름 없다. 간디가 닿아 있는 진리의 세상을 부정하는 종교적 확신 속에 단지 하나의 종교일 뿐인 기독교가 있다.
반대로 그 불안정한 진짜로 하나되어 불안정해지는 곳에 영적 기독교가 있다. 그때에 확신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감춰진다. 마치 십자가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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