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라는 인물은 이스라엘을 위해 신이 왕으로 세운 사람이다.
곧 신에게는 다윗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앞에 있다. 절대 이스라엘 대신 다윗을 택할 수 없다.
곧 다윗을 위한 일이 아니다. 진정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존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일이다.
다윗은 한 명 한 명 함께하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자기를 위한 도구가 아닌 함께하는 사람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라는 선택된 이들일까? 내가 이스라엘이니까 선택받은 것인가?
아니다. 이스라엘 다운 곳이 이스라엘이다. 다시 표현하자면 선을 향하는 곳이 선한 곳이다.
한 명 한 명의 사람을 살피며 관계성이 살아있는 집단이, 지신보다 더 큰 적을 이길 수 있는 더 큰 조직력이 생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신이 적군인 블레셋에게 하는 것이나 이스라엘에게 하는 것이 정말 달랐는가?
다윗에 의해 쓰러져 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신의 마음이, 이스라엘에 의해 쓰러져 가는 다른 나라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정말 달랐겠는가?
우리는 자신과 다르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한다. 악이라 한다.
아니다. 내가 이스라엘이라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나와 달라서 블레셋이 아니다.
'누가 악인인가'가 아니다. 오로지 '내가 선을 향하는 가'만이 있다.
곧 신에게는 다윗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앞에 있다. 절대 이스라엘 대신 다윗을 택할 수 없다.
곧 다윗을 위한 일이 아니다. 진정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존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일이다.
다윗은 한 명 한 명 함께하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자기를 위한 도구가 아닌 함께하는 사람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라는 선택된 이들일까? 내가 이스라엘이니까 선택받은 것인가?
아니다. 이스라엘 다운 곳이 이스라엘이다. 다시 표현하자면 선을 향하는 곳이 선한 곳이다.
한 명 한 명의 사람을 살피며 관계성이 살아있는 집단이, 지신보다 더 큰 적을 이길 수 있는 더 큰 조직력이 생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신이 적군인 블레셋에게 하는 것이나 이스라엘에게 하는 것이 정말 달랐는가?
다윗에 의해 쓰러져 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신의 마음이, 이스라엘에 의해 쓰러져 가는 다른 나라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정말 달랐겠는가?
우리는 자신과 다르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한다. 악이라 한다.
아니다. 내가 이스라엘이라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나와 달라서 블레셋이 아니다.
'누가 악인인가'가 아니다. 오로지 '내가 선을 향하는 가'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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