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다음 웹툰 <아 지갑 놓고 나왔다>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motherdaughter
1.
강간을 욕망의 문제라고 변명한다.
아니다. 욕망은 가치중립적이다.
욕망이 아니다. 힘이 있으면 타인을 짓밟아도 되는 구조가 원인이다.
힘이 있으면 죄가 아닐 수 있는 구조, 힘이 있으면 약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원인이다.
힘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있으면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없는 환경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비켜주어야 할 일이 있으면 알아서 비켜 줄 것이다. 죄는 이미 사람들을 치우는 것에서 시작됐다.
내가 더 능력이 있고, 더 머리가 좋다고 내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와 함께 결정해야 한다.
2.
그러나 공동체 자체가 잘못될 수도 있다.
우리는 피해자를 두고 더러워졌다고 한다.
아니다. 그는 죄가 없다.
더러워 진 건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로 더러워 진 것이다.
평생을 공포로 살아가게 만든다. 생명의 잉태가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살인에 비할 수 있는 죄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 그럼에도 평생에 고통받을 일이 따라 온다.
우리는 가해자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제발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어떨 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삶이 되기도 한다.
이미 그런 고통에 있을 이들에게 차별을 통해 고통을 더하는 일을 거두어야 한다.
삶을 끔찍하게 만드는 건 직접 가해자만이 아니다. 가해자는 집단 자체다.
3.
우는 자를 위에서 내려다 보지 말라.
억울한 자에게 훈수두지 말라.
타인의 고통에, 나는 상관없는 곳에서 판단내리고 있지 말라.
그것이 죄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라.
억울한 자의 억울함을 들어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이나
이미 죄를 극복하는 힘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우린 이미 이겨낼 수 있다.
고통 있는 사람이 있으면
고통을 없에라고 강요하는 게 정상이 아니라
함께 고통스러운 게 정상이다.
한쪽만 고통스러운 것이 오히려 내가 썩어지는 길이다.
나를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
구조적 가해에 고통 받는 이들에게 더 상처를 주지 말라.
그런 일은 피해자가 썩어지게 만들고 내가 썩어진다.
그저 우는 자와 함께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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