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인 디도서 2장 5절에는, 여성은 집안 살림을 잘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이 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여성상일까.

같은 장 9절에서는 노예는 모든 일에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이 있다.
그것은 노예제가 정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삶의 기준을 세속적인 것에 두지말고 정의와 사랑에 두고 살라는 의미다. 그러한 삶의 기준은, 자기 자리에서의 성실로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속의 논리를 넘어 존경스러운 삶으로 초대되었다는 선포이다.

신약은 구약의 진정한 뜻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그 중심논리를 읽어내어 이 땅에서의 삶의 모습을 해석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양성의 모델이 창조디자인일 수 있으나, 신은 어떤 여성에겐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며 지배하는 여성을,  어떤 남성에겐 배려하고 세심하며 수용하는 남성을 맡겼을 수 있다.
사람이 자기가 익숙한 문화를 기준으로 여성상과 남성상을 주장하지만, 신의 계획을 자기본위로 그렇게 쉽게 재단해선 안된다.

여성이 진정한 여성으로, 남성이 진정한 남성으로 발현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의무다.
양성평등을 넘어 성평등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오히려 차별과 인간적 고정관념에 갖혀있는 진정한 여성과 남성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무슨 악의 축 정도로 생각하고, 반대하지 않으면 자유주의자라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근본이란, 노예라는 자리에서 그 넘어의 것으로 체제전복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탈이념이 어떻게 정의와 사랑을 지향하게 되는지, 그에 걸맞는 소비가 무엇인지, 세계화의 문화파괴와 노예화 속에서 생명평화의 지역화를 어떻게 이룩해 나갈지를 구도하는 과정 중에 있다.

이 땅에서의 성실이 알파걸, 슈퍼맘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성차별을 걷어내고, 다양한 가정형태가 차별당하지 않고, 여성이 공공재가 되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그때에 개인은 자기본래의 모습에 다가갈 것이다.
회복된 모습 속에서 가정과 출산에 대한 건강한 모습 역시도 회복되고, 여성과 남성 역시도 회복될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남녀가 창조디자인이 아니다. 회복된 모습이 진정한 신의 계획이다.

'고요한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레몬서  (0) 2016.11.07
디도서 3:1-7  (0) 2016.11.04
나훔 3:1-19  (0) 2016.10.31
나훔 1:1-8  (0) 2016.10.28
시편 74:12-23  (0) 2016.10.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