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앞에서 "신앙 생활 하세요"라며 뭔 갈 나눠준다.
교회 사람들의 이웃에 대한 이해는 매우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은 나의 경계에 닿는 이들이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쌀을 제외하고 매우 처참하다. 이는 다른 나라의 삶터와 자연을 파괴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들 마실 물을 농업용수로 소진해서 가져오는 것이다.

한우는 어떤가? 그 사료가 어떻게 오는가?
육식만 최소화해도 이미 굶주림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이 싼 육식은 곧 누구의 삶터와 생활이 그것을 위해 재물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휴대폰 또한 대표적으로 다른 나라의 삶터를 파괴하는 우리의 삶이다. 스마트폰의 필수 재료 콜탄은, 밀림을 밀어버리고 내전을 방조하여 싼 값으로 우리 손에 들어와 이렇게 많은 서람이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스마트한 생활이 난민이 만들어지는 원인이다.

국민으로서 누리는 대한민국의 인프라는 한국 경제가 그 기반일 것이다.
이 경제는 열악한 외국인 노동 현장, 고용허가제로 미등록을 만들어 더 쉽고 싸게 쓰고 버릴 수 있는 구조가 받치고 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면서, 공동체 공동체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편리함을 받치기 위해 직접적으로 그들의 목숨이 사용되고 있는 바로 그 이웃들은 공동체 속 어디 있나...
바로 그 경계의 이웃과 닿지 않는다면 거창하게 말해봤자 귀족적 클럽이지, 절대 주님의 공동체는 될 수 없다.
미등록자, 노예, 홈리스, 난민이 당신의 몸과 같아지는 곳이 주님의 공동체가 가진 특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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