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시대에 부활이란 육체의 부활이었다. 예수 자신이 육체로 부활한 전승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러하다면 수많은 이들이 부활한다고 했을 때 지구는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육체라는 것은 태양과, 대지, 땅, 동식물, 역사,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개체와 죽음, 인간과 비인간 모든 것이 그 생명에서 하나다. 그 하나님이다.
그것이 제거되었다는 것은 더이상 육체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그 유기체성 속에 예수란 누구인가?
부활 후의 예수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지식 역시 문화적 역사 속에서 들어 왔다. 역사적 예수 혼자 창조한 것이 아니다.
케리그마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는 사실 다른 것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창세 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바로 그 지식이 전달되어지고, 바로 그렇게 선포될 곳이기에, 예수가 그 자리로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근본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인간이 만든 사후세계는 인간의 욕망이 들어 있다. 인간이 신을 만들어 낸다. 소유한다.
그러나 태초의 작고 따뜻한 웅덩이에 들어가는 것에는 욕망이 스며들지 않는다. 소유된다.
태초에는 회귀에는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모든 태양과, 대지, 땅, 동식물, 역사가 있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 닿아 있다. 지금 여기에 있고, 모든 장소, 모든 존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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