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정확한 말이 아니다. 기독교의 신은, 신이 보이지 않기에, 신을 고백할 수 없기에, 바로 그곳에 있다. 신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만 신이 드디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비가시화 되어서 불법이 되었다. 그래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그들의 불법은 없는 것이 되었다.
이곳에 인간의 신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휘두르던 죽음의 폭력과 악의가 드디어 백주 대낮에 드러난다. 외로이 멸시 당하던 그 자리에서 함께 멸시 당해가는 이들이 드러난다.
기독교의 신은 관념적인 이상 세계의 정의가 아니다. 육신으로서 그 억울함 속에 계신다. 당신들은 가리려 했고, 검은 어둠 속에 담가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감춰지지 않는다.
바로 그 오늘자 신의 기록을 남기려 한다.

장면1. 수협은 인간이 너구리를 잡는 그 위치에 서 있었다. 강풍기를 쏘면서 굴에 가득하게 가스가 차듯이 만들었다. 최루 성분인 소화기를 직접 몸에 얼굴에 뿌려댔다. 머리라도 보이면 총으로 머리를 쏴 죽이듯이 살수기로 조준 사격을 했다. 소화기를 쏘면 꼭 물을 쏘라고 지시했다. 그 성분이 잔뜩 들러붙게 했다. 낮인데도 발밑조차 보이지 않았다.

장면2. 온 몸은 저체온에 떨리고, 최루 성분에 콧물이 계속 나왔다. 마스크 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마스크가 젖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으면 코와 잎에 소화기 분말이 가득 찼다. 물과 분말이 뒤섞여 온 몸은 전체가 하얘졌다가, 씻겨 나갔다가를 반복했다. 눈이 떠지지 않았지만, 감을 수도 없었다. 편의점 앞에 갖다놓는 그런 플라스틱 테이블로 막았지만 그것이 부서질 정도로 그들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들은 위에서 군화보다 딱딱한 안전화로 내 턱을 걷어찼다.

장면3. 몇몇 상인들이 망루에 고립되었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고 집중적으로 물대포를 맞은 분들이었다. 망루 위는 더 많은 바람이 불었다. 추위에 힘들어 하셔서 벽 너머로 옷을 건네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수협 소속 한 명이 그 옷을 빼앗아 자기가 입고는 즐겁다는 듯이 비웃었다. 그리고 마치 자랑처럼 얘기했다. 자기가 노량진 상인들 쫓아내면서 비아냥거리는 능력을 잘 배웠다고.

장면4. 상황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상인 한 분이 말씀하신다. “여기가 옛날에 어떤 곳인지는 아무도 몰라. 여기 다 쥐똥 밭이었어. 자갈이랑 모래만 있던 곳. 우리가 다 일궈 놓은 거야. 나 여기서 40년 있었지. 그렇게 좋은 곳 만들어 놓으니 지들이 먹으려고 이 짓하고 있는 거야.” 노량진 시장은 미래유산이라 서울시가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카지노도 들어올 수 있는 개발 한다면서 수협 측에 그냥 넘겨 버렸다. 수협은 엄청난 돈을 챙겨나갔다.

장면5. 중간 모임이 있었다. “여러분. 저들이 하는 짓 다 드러나게 했으니까 우리가 이긴 겁니다. 잠시 쉬고 또 투쟁 이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욕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마세요. 저도 그 마음 압니다. 저도 흥분하면서 욕이 안나올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여성에 대한 비하 표현, 장애인에 대한 비하 표현은 익숙하다고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장면6. 상황은 끝났지만 경찰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119가 들어오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그런 날이면 경찰들은 오히려 더 많은 병력을 데리고 나오고 더 오래 머문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인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그러나 경찰은 언제나 그렇듯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다. 광주의 그날처럼 그건 우리에겐 익숙한 장면이다. 경찰에게 막혀 계단의 위와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를 나눴다. 농담처럼 나눴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 예수가 들어오려고 해요. 들여보내주세요.”

장면7. 밤이 되고 다시 육교 위의 불빛이 켜졌다. 아무것도 받쳐주지 않는 삶이 거기에 내걸려 있었다.


장면8. 현장의 심각성에 비해서 나는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몇 군데가 작게 찢어지거나 손가락이 부어오른 정도였다. 목이 아프다. 침만 삼켜도 아프다. 처음에는 분말을 너무 들이마셔서 그런지 알았다. 이제 생각해보니 걷어차인 그곳이다.
사람들은 정의를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몸으로 함께 고통스러울 수 있을 뿐이다. 같은 곳에서 함께 겪는 내 고통이 있어야 비로소 그곳의 고통들이 떠오른다. 동시에 여전히 안전한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 나의 부정의가 함께 선명해진다. 정의를 안다는 건, 가려지는 부정의의 장소에서 함께 가려진다는 것이며, 동시에 내 부정의를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도저히 신을 찾아볼 수 없어서, 신이 최루액을 가득 뒤집어 쓰고 떨며 망루에 오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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