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살을 말리는 역할대신, 자살로 가는 길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
자살을 말리지 않고, 자살 전에 하고 싶은 말들 들어주는 것이다.
자살하는 이들이 자살하지 말라는 말을 못들어 봤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하는 상황까지 무엇이 있었겠는가.
적어도 알려야할 상황들 있으면 알려주고,
알리지 못할 상황 있으면 알리지 못함을 함께할 것이다.
장례 방식에서 원하는 바가 있을 때
(예컨대 논비건은 하지 말라던가)
그걸 공증 받은 유서로 작성하지 않더라도,
녹음이라도 해서 그 일을 다퉈보거나 알려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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