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구원을 어떻게 볼것인가-사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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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사랑한다. 이에 예수는 만물의 구원자로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취된 종말론적 완성은 도래의 때로서 역사 안으로 돌입한다. 이를 통해 이뤄지는 ‘새창조’는 만물의 구원을 향한 해방이다.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공동운명체로 지음 받은 공피조성 안에서 동물들은 모두 친족관계에 있다. 생명 해석학에 의거한 성서 읽기는 동물도 동등도 회개의 주체였음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이러한 회개 역시도 여전히 인간의 회개에 종속된 것이라는 이해가 있다면, 혹시 거기엔 인간중심주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을 동물과 이항 대립관계에 놓는 것은 근대적인 위계적 이분법이다. 이러한 ‘경제 짓기’를 통한 권리의 확보는 배제를 통한 폭력이란 점에서 불법적인 것이다. 인간과 동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비둘기, 개, 돼지와 같은 종이 있는 것이고, ‘동물로서의 인간’이 인간/동물 이분법을 극복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열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아의 구원이나 지적 장애인의 구원 역시 의심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더욱 근원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구원의 주체는 은혜를 베푸는 이다. 각자에게 맡겨진 자기다움의 회개와 구원이 있다. 인간의 회개와 구원은 비둘기의 회개와 구원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그 둘 모두 동물의 회개와 구원이다. 성화에 해당하는 ‘새창조’의 다스림은 대리자의 다스림이 아니라 창조자의 다스림이다. 성서는 오히려 비인간 동물의 구원이 인간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고 보고하고 있다. 다스림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평화가 다스리도록 관계 맺는 것이다. 신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과정신학을 통해서는 구원의 관계적인 측면을 살펴볼 수 있으며 타자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신학이기에 동물의 구원을 이해하는데 있어 좋은 관점을 제공한다. 과정신학에서도 반역의 죄와 원죄가 설명되며,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관계 속에서 비인간 동물에 대한 구원이 길이 열린다. 또한 동물―되기의 길을 열어 인간도 동물로서 ‘동물의 구원’으로 개방된다.


“예수가 돼지고, 돼지가 예수다.”라는 언명은 도살당하는 동물로 예수를 묘사하는 성서구절과 달리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거부감은 배타적으로 형성된 ‘인간의 얼굴’을 지우는 작업이기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위계적 이분법을 고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의 자리로의 부르심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동물의 구원에는 두 개의 차원이 있다. 그것은 개별 동물이 주체가 되는 구원이자, 동물로서 연대하는 구원이다.


“모두가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는 구호는 이러한 이해와 함께 한다. 나의 해방과 너의 해방, 혹은 우리의 해방과 그들의 해방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우리의 해방이 있다. 그것은 ‘동물로서의 인간’의 해방인 것이다. 또한 “모두가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는 구호는 생명 단 하나로 구조 악의 한 가운데서 생존으로 저항하는 동물 당사자의 외침이다. 그 외침은 언어 너머의 목소리다. 고통을 연결하고 평화의 길을 제시하는 이 안에서 우리는 그 방언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연대 안에서 종말론적 완성의 새창조를 지어간다.

 

- 목차 -

1. 서론   2
2. 비인간 존재들의 구원   2
3. 탈인간중심적 동물 이해   4
   3.1. 공피조성의 친족됨  4
   3.2. 인간중심주의라는 불법   7
4. 동물의 회개와 성화   10
   4.1. 동물의 회개를 어떻게 볼 것인가  10
   4.2. 하늘에서 내려온 비둘기의 통치   12
5. 과정―관계적 동물의 구원   14
   5.1. 신과 세계의 과정적 관계  15
   5.2. 과정―관계적 죄와 구원   17
   5.3. 동물―되기의 신학   20
6. 도살장의 그리스도   21
7. 결론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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