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신에게만 의지한다'는 것과
철저히 신에게만 의지한다는 '자기확신'이나 '종교문화'에 의지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가치관도 자아도 느낌도 너머
지금여기의 신을 마주하고
그것을 통해 그 너머의 신을 마주합니다.
거기서 만나는 신은 하나일 테지만(그런 의미의 하나님)
그 길로 가는 과정은 종교적 전통에 따라 다릅니다.
기독교, 곧 살해 당한 구원자의 신은 여기에 있습니다.
껍질에 벗겨진 채 달려 있는 신에게만 의지합니다.
양육자들의 시체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에게만 의지 합니다.
바로 이 부조리의 한 가운데로 모두를 연결한 신에게만 의지 합니다.(하나가 된/되는/되게하는 님)
기독교의 초월은 현실에서 표현될 때, 언제나 아픔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합니다.
전체 존재가 성문 밖으로 나서게 합니다.
초월의 명상이 내 존재 전체를 신이 사는 그러한 삶의 자리로 옮기지 않는다면,
나는 기독교보다는 다른 종교가 어울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곧 살해 당한 구원자의 종교는,
그 제자들이 유대교를 넘어서 다른 종교적 전통으로도 섬겼던 모습과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들을 하나님으로 섬겨야 합니다.
바로 그 섬김이 철저히 하나님에게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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