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윗은 간통으로 얻은 아이를 살린다며 일주일간 금식과 통곡으로 기도를 드리나 아이가 죽자마자 털고 일어난다.
슬픔을 의도적으로 과장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슬픔이 그런 식으로 단박에 끊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신에 대한 순전함만으로 한 행동이었을까. 다윗은 스스로가 자기 행동과 말로 요술방망이처럼 신을 부리려고 했다는 혐의를 보여준다.
오히려 사람들은 어떤 것이 정상적인 것인지 알고 있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2. 전투의 모습이다. 다윗은 여전히 전쟁이란 고난의 현장에 타인을 앞세우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다가는 또 필요할 땐 먼저가서 명예를 쫓았다. 또한 뻔히 보이는 승리에 더이상 하늘에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큰 약탈이었다.
<해석>
- 권력은 불평등의 상징이다.
- 그것은 물질로 표현되어, 불평등이 마치 정당한 상급으로 여겨지게 한다.
- 그러나 그 물질의 실체는 작은 사람들의 노동이며, 인간의 소유가 아닌 자연이다.
- 곧 불평등이란 약탈이다. 사람에 대한 약탈이자, 사람의 근본에 대한 약탈이다.
- 우리는 타락이 단지 개인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다윗의 타락에 나를 투영하여 변명하려든다.
- 그러나 불평등 자체가 악이다. 악이 사람을 물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윗이 특별히 타락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자리가 타락의 자리다.
- 사람들은 타락을 변명하며 다윗의 높은 신앙 수준을 말한다.
- 그러나 결국 그 수준이란 것은 사실 자기가 만드는 기준이다. 자기 기준이다.
- 사람은 악에 물들 수 있다. 그러나 물들어 버린 악을 변명하면, 거기서 끝이다.
- 어디까지면 선한 사람이고 악한 사람이라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세운 기준을 통과하는 게 아니다.
- 가야할 길은 끊임없는 돌이킴이다.
- 다윗도 악했다. 권력은 악을 물들인다. 다만 다윗은 돌이킴을 통해 끊임없이 악을 감당했다. 악함이 없었던 게 아니다.
- 돌이킴은 이미 완성 되었다. 돌이킴 자체가 일한다.
- 그것을 자기 능력으로 하려고 할 때, 그것은 또다시 자기 기준을 만든다.
-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자연 속을 걸으며, 기도하고 명상하라. 그것은 차라리 노동보다 더 큰 의무다. 그것만이 돌이킴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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