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여러 명을 살리는 것과 한 사람을 살리는 게 다른가?
가진 능력의 크기가 다르다고 하여 정말 다른 것인가?
내가 가진 능력을 비교하면서 내 믿음을 의심하는 일을 통해, 사실 내가 믿고 있는 건 신이 아니라 힘이었음이 드러날 뿐이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신이 하는 일이다.

나에게 평생 한 사람 품는 일이 마련됐다면, 그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마술을 보여주었어도, 그는 신이 아니라 마술을 믿었을 것이다.
그에게 마련된 일이 나의 평생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지는 알 수 있다.
평생 한 사람에게 동행하더라도 나는 다른 일들과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해질 것이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오직 하나됨을 위해서 풍성해 질 것이다. 나와 그의 삶이 아닌 우리를 살아가게 되어 그와의 관계 빆으로도 우리가 넘칠 것이다.

바울의 기적은 단지 눈을 멀게 한 일이 아니다. 바울은 악한 사람을 악을 지적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회복되었던 길을 비추었다. 당장 자기가 줄 수 있는 소유물(능력)을 시간을 생명을 그에게 전달해 주었다.
바울은 바뀌었다. 바울이 변할 수 있게 한 그 변화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눈이 멀든 멀지 않든 중요하겠는가.
바울이 자기가 기준이 되어 그 사람을 바꾸려고 했다면 애초에 눈이 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서도 나타나는 동일한 과거의 고통에 공감하며 시혜가 아니라 서로 손을 잡기위한 일을 했다. 눈이 멀지 않았어도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길이 마련되었을 것이다.

잠깐 마술부린 게 기적인가, 평생을 함께 하는 일이 필요한 사람에게 평생을 주는 일이 더 큰 기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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