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받지 않거나 이단에서 받은 세례만 있다면, 그는 기독교인인가?
물론 성령으로 받는 세례는 세례식에만 얽매이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나와 다른 방식에 대해 맞다나 틀리다로 말할 수는 없다. 단지 할 수 있는 말은 '모른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호함과 도(예수)에 대한 선명함이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겐 '모른다'지만 나에게 세례가 선명하면 내가 세례를 받으면 될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오로지 서로 도에 대해 반응하고 나누는 일이다.

강도가 높은 도를 위한 노동을 감당하는 것에만 반응하고, 그에 대해서만 나누고 있다면, 오히려 그가 세례를 받았어도 기독교인인지 돌이켜야 한다.
모든 곳에 도를 위한 노동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곳에, 예배를 잊게 만드는 일상 속에, 비우지 못하는 자기 욕심에, 인간성의 한계에, 모두 그 자리에서 거기에 맡겨진 도를 위한 노동이 있다.
우리는 그 모든 노동 안에 있는 도에 반응하고 나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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