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문자 안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문자에 대한 예수의 해석 속에 살아 있다.
그 예수는 자기 문화로 번역한 제자들의 해석을 통해 살아 있게 되었다.
우리가 이 땅으로 해석할 때 예수가 살아 있다.
우리는 예수는 절대 책으로 만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는 책을 건네 준 문화를 통해 만난다.
예수는 문화일 뿐이라는 감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가 신이라는 생각 속에서, 이성적 박제가 일어나며, 예수의 신성은 사라진다.
언제든 확고함이 말랑해진 그 상태 속에서 예수가 신이 아님을 향해 열려 있을 때에야 예수의 신성이 살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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