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실 우리나라 대표에게 퇴진하라고 말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보다 더 큰 불편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혜택을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퇴진을 얘기할 수 있다.


박사모가 돈을 받더라도,

스스로는 뜻있는 일이기에 받는 혜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 안에는 누군가를 지키려는 마음과 뜨거운 가슴이 있다. 애초에 그가 지키려는 건 비리가 아니다.


박사모로 분리시키고 있으나, 그 안의 외로운 그 한 사람에게 찾아가고, 안아줄 수 있는가.

그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받았던 것 처럼, 그가 지금 알고 있는 뜨거움과 혜택보다 더 큰 것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쓰고 버릴 돈 몇 푼과 존중을 담은 평생의 포옹. 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문제는 무엇이 맞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뻔하다. 진정한 문제는 내가 영혼을 통해 진심으로 그의 옆에 있어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회복된 그 스스로가 무언가를 할 것이다.

그가 평생 박사모에 위치해 있다해도 무슨 상관인가. 애초에 각자의 능력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다.

그에게 전해준 온기가 그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진정한 대한독립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박사모를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과 완벽히 양립할 수 있다.

진정한 본질이 무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8:52-59  (0) 2017.02.03
요한복음 8:42-51  (0) 2017.02.01
십자가 의미  (0) 2017.01.08
60일 서언  (0) 2017.01.06
요한복음 2:1-12  (0) 2017.01.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