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의 아들 가운데서, 나답과 아비후가 제각기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불을 담고 향을 피워서 주님께로 가져 갔다. 그러나 그 불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것과는 다른 금지된 불이다.
주님 앞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삼키니, 그들은 주님 앞에서 죽고 말았다.
(레위기 10:1-2)
그들이 원래 올렸어야 하는 불은 꺼지지 않아야 하는 번제 불이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우선 제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내 생명을 이어가게 해주는 것, 내 죽음을 막아주는 것, 그것이 제물이다.
곧 내 생명은 나에게 있지 아니하고 제물에 있다. 나의 생명을 대신 하는 것이며, 나는 그 생명 안에 포함된다.
그 중에서 번제는 나의 존재 자체에 드리는 제물이다. 내 안의 첫번째 나, 근원의 내가, 죽음의 세상 속에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게하는 것이다. 신은 제물이 되어 대신 죽는다. 오로지 우리는 번제 속에 속해있다.
제물에 있어서 주체는 우리가 아니다. 제물이 우리의 주인이며, 궁극적으로 제물의 주인이 우리의 주인이다.
이 제물들은 우리의 삶 속에 있으며, 실제 우리를 대신하여 살고 죽는 생명들이다.
우리는 생명을 빚진 존재임을, 그리고 그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언제나 깨닫는다.
그래서 나의 생명은 언제나 제물 앞에 수동적이며, 나 역시도 제물되는 삶 속으로 들어간다.
바로 그러한 번제의 불이었다. 곧 그 생명의 고리에 속해있지 않을 때, 우리는 죽음을 지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전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이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보며 누구보다 피로 눈물을 흘린 것이 하나님이셨을 거다.
스스로 제물 속에 거하면서 우리를 생명으로 안아주신 그분에게, 나답과 아비후는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들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들-곧 제물되는 존재들-에 대해 감사하고 슬퍼하고 있는가?
생명을 빚진 이들은 그러한 경건이 있다. 내가 키우는 양에게도 빚을 지고 있고 경건하다.
내 것이 아니며 나도 생명에 속해 있다.
그러한 감사와 슬픔의 경건함을 잃었을 때, 우리는 생명에서 끊어진다.
주님 앞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삼키니, 그들은 주님 앞에서 죽고 말았다.
(레위기 10:1-2)
그들이 원래 올렸어야 하는 불은 꺼지지 않아야 하는 번제 불이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우선 제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내 생명을 이어가게 해주는 것, 내 죽음을 막아주는 것, 그것이 제물이다.
곧 내 생명은 나에게 있지 아니하고 제물에 있다. 나의 생명을 대신 하는 것이며, 나는 그 생명 안에 포함된다.
그 중에서 번제는 나의 존재 자체에 드리는 제물이다. 내 안의 첫번째 나, 근원의 내가, 죽음의 세상 속에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게하는 것이다. 신은 제물이 되어 대신 죽는다. 오로지 우리는 번제 속에 속해있다.
제물에 있어서 주체는 우리가 아니다. 제물이 우리의 주인이며, 궁극적으로 제물의 주인이 우리의 주인이다.
이 제물들은 우리의 삶 속에 있으며, 실제 우리를 대신하여 살고 죽는 생명들이다.
우리는 생명을 빚진 존재임을, 그리고 그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언제나 깨닫는다.
그래서 나의 생명은 언제나 제물 앞에 수동적이며, 나 역시도 제물되는 삶 속으로 들어간다.
바로 그러한 번제의 불이었다. 곧 그 생명의 고리에 속해있지 않을 때, 우리는 죽음을 지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전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이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보며 누구보다 피로 눈물을 흘린 것이 하나님이셨을 거다.
스스로 제물 속에 거하면서 우리를 생명으로 안아주신 그분에게, 나답과 아비후는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들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들-곧 제물되는 존재들-에 대해 감사하고 슬퍼하고 있는가?
생명을 빚진 이들은 그러한 경건이 있다. 내가 키우는 양에게도 빚을 지고 있고 경건하다.
내 것이 아니며 나도 생명에 속해 있다.
그러한 감사와 슬픔의 경건함을 잃었을 때, 우리는 생명에서 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