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를 용서한다. 죄 있는 존재를 용서하는 것은 신의 자기 제한이며, 곧 신의 죽음이다.
죄값을 치루는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완전히 감싸안아 질 때 나는 어떤 잘못도 없다. 그때에야 우리는 도리어 우리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돌이켜 살아간다.
죄는 죽음이고 죽음을 값으로 치룰 수 밖에 없다. 죄값이 없어질 수는 없다. 다만 다시 돌이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신은 죽고, 신은 부활한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 생각했던 내가 죽고, 태초의 내가 함께 부활한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용납한다. 우리의 품으로 안아준다.
그것은 우리의 친절이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용서받고 용납될 때에 가능해진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변명 속에서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떤 내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똑같은 실수와 고통을 반복해도 괜찮다. 무엇이 고쳐지지 않아도 내가 온전히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죄책감이 아니라 슬퍼할 수 있다.

나는 신을, 그리고 나를 배신하는 존재다. 나는 그렇다.
그리고 신과 함께 부활한다. 나는 그렇다.

내 힘으로 타인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있다면, 나는 나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나에 대한 용서에 잠겨들 때, 나를 받아들여주고 있는 육체들을 알아차릴 수 있게되고, 돌이켜 감사한다.
나는 용서와 용납이 흘러 나가는 존재가 된다. 나의 죄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용서와 용납, 슬픔을 안고 있다. 그것이 죽음과 부활을 살고 있는 증거가 된다.

'고요한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가랴 5장  (0) 2017.12.06
스가랴 4장  (0) 2017.12.05
스가랴 2장  (0) 2017.12.03
시편 97:1-12  (0) 2017.11.28
에스더 9:20-10:3  (0) 2017.11.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