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것을 표현하는 용어가 '예수'다.
'예수'는 '신이 구원한다'는 외국말이다.
인간 권력의 통치는 지배다.
그러나 신의 통치는 지배가 아닌 이것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예수'는 전혀 이상적 존재가 아니다.
바로 여기 때묻은 세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한계 때문에 온다는 약속이다.
변기(구유) 속에서 태어나는 미성년자 미혼모의 아이는
완전히 선하거나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여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대상화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일 뿐이다.
그 잃어버린 것이 '예수'다.
빼앗고 배제하여 잃어버릴 수 없는, 곧 죽지 않는 권력을 신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잃어버린 것, 곧 죽음 속에 내몰린 이들이 신이라고 울먹이며 외치는 소리,
그 소리를 표현하는 외국어가 '예수'다.
'예수'는 결코 완벽이나 초월이 아니다.
그저 계속 만나고 더해 가는 이것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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