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대의 존재를 듣는다는 것이다. 존재를 듣는다는 것은 상대가 바라보는 내가 무엇인지까지도 가닿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를 듣는 일은 서로 정보나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와는 다르다(1:19). 또한 그것은 그냥 경청과도 다르다. 그와 나 사이의 관계, 서로의 만남이란 것 자체가 차라리 어떤 인격적 존재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것은 접신 혹은 명상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그 존재의 듣기는 단순히 인간관계가 아니라 우주적 소리를 듣는 훈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1:21).
세계를 듣는다는 것 혹은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최근에 유행하는 마음의 평화를 위한 요가 같은 것과는 다를 것이다(1:22). 마음의 평화는 세계를 만날 때의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만 따로 떼어내면 결국 생활 속에서 행하는 힐링 문화의 소비가 될 뿐이다(1:24). 세상을 듣는다면 고통이 없을 수 없다. 내 몸의 한 세포가 바늘로 찔리면 나라는 전체 자아가 아픔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 몸을 움직인다. 내가 세상을 듣을 때, 곧 그 영을 접신할 때, 바로 그 세상 자아와 하나가 되고, 세상이 하는 노동의 한 세포가 된다(1:25).
내가 고통을 느끼고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의 평화가 없으면 불가능하다(1:25). 곧 평화는 내가 편한 것이 아니다. 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1:25, 27).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우주적 사랑 안에 있을 뿐이다(1:25).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생각하는 게 아니다. 다만 관계의 영이 하는 얘기를 듣는 일이다. 나와 그가 만난 그 관계는 하나의 영혼이다. 나도 너도 아닌 우리라는 인격이 있다. 그리고 그 우리라는 영혼은 분명 내가 지워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나의 욕심으로만 가둬져서 죽음을 뿌리고 다니는 살아있는 위선자가 되지 않도록(1:26) 나를 살린다. 나는 내가 아닌 것으로만 이뤄진다. 너의 삶은 우리로서의 나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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