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친족에 대한 확장된 개념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흔히 기독교에서 형제자매로 표현하는 것은 실제 친족이 아니라 좁게는 하나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말하기도 하고, 더 넓게는 개신교 혹은 기독교 전체 신도들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세계화 사회에서 실질적 측면에서 나의 생활과 육체를 구성하는, 곧 피값에 더 가까운 이들은 노예노동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착취당하고 있는 New Poor인 자연이기도 하다. 구원은 인간 종만 따로 떼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닌바, 함께 구원의 대상일 될 더 넓은 친족은 자연이다. 이처럼 자연을 친족으로서 알아볼 수 있을 때, 한국인의 친족으로서 착취당하는 외국인들 역시 인류로서 친족임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종차별주의와 신제국주의는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은 위계적 이분법에 의해 형성된다.
진화적인 측면에서 친족됨은 풍요를 이루는 하나됨이다. 기린은 얼룩말이 없었으면 목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덩치만 커졌을 것이다. 관계로서 기린은 얼룩말과 같다. 서로의 관계가 서로를 형성한다. 하나 된 연결성은 다양성, 곧 풍요로움이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간 역시 인간이 아닌 것들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만의 특성을 통해, 인간 없는 곳에서는 없었을 풍요를 자연의 친족들과 함께 만들어낸다. 하나됨 속에서 육식동물의 육식은 절대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다. 국립공원에 늑대를 복원하자 망가졌던 국립공원의 생태계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모두는 하나 된 일원으로 연결성 속에 있다. 그 어떤 육식동물의 육식도 하나 된 연결성 안에서 공동의 주체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착취이고 죽음이다. 하나 된 연결성을 벗어나서 육식동물만이 주체고 초식동물은 대상이 되어 버리는 세계는 더 큰 죽음으로 다가 온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하는 고기 소비는 생명의 파괴이자 폭력이지 육식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비인간 동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고기다.
지금은 공룡 대멸종과 같은 속도로 야생의 생명들이 파괴되고 있으며, 축산의 이름으로 생명이 유린되어 물건으로 소비되고 있다(2:15). 이때 말로만 하는 생명평화, 자위와 같은 개념뿐인 생명평화는(2:16), 그 자체로는 죽음과 다르지 않다(2:17). 그러나 자연 친족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신념체계가 있다. 신자유주의, 종차별주의, 신제국주의, 가부장제는 위계적 이분법의 다른 표현들이다. 바로 그것에 기반한 신념체계에서는 자연이나 가난한 이들에 대해 친족이란 인식이 없게 되며, 따라서 그들을 향한 직접행동이 부재하게 된다(2:20). 반대로 위계적 이분법을 극복한 신념체계에서는 세상과 실제 혈족의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잘라내지 않는다(2:22). 예컨대 내 자식 하나 살린다고 황폐화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자식 하나 살린다고 하나 된 연결성을 끊는다면, 황폐화 된 곳에서 다른 이들의 죽음이 따른다. 더 많은 죽음이 만들어 진다. 그것이 가시화 되지 않는 이유는, 권력을 통해 힘없는 이들의 그 피값들을 비가시화 시킬 수 있기 뿐이다. 바로 현대사회가 그렇게 노예노동과 빈곤인의 죽음을 값으로 치러 안락함을 누리는 곳이다. 반대로, 내 자식의 고통 앞에서도 하나 된 연결성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식을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전체주의의 망령 때문도 아니다. 그가 그저 하나 된 연결성 속에 있기 때문이다(2:23).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결국 그가 갖고 있는 신념체계에 따라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위계와 비가시화가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죽음의 신념체계를 따르기 때문이다(2:26). 생명의 연대가 나오는 것은 생명의 신념체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반면 침묵하면 차별의 위계가 유지되는 현대사회에서, 그 침묵은 차별의 지지나 다름없다. 차별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 이뤄지는 차별의 반대편에서 저항하는 목소리가 그가 가지고 있는 신념체계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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