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기독교는 종종 현실 권력을 정당화하면서, 자기는 권력적이지 않은 낮은 자이며 정의로운 자라는 꾸밈을 충족해 주는 똥휴지다.
사람들은 그 똥휴지를 기독교 자체로 본다.
그러나 기독교는, 권력은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힘은 낮은 곳을 위해서만 있어야 한다 것이 본래적 진리라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그것을 찾는다는 것, 그 사실이 비춰진 것이 기독교다.
사람들은 똥휴지에 십자가 희생이니 구원이니 뭐니하며 가져다 붙이면서 금칠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도 숭고한 일에 함께 한다고, 이 미천한 내가 주님 덕분에 얼마나 은혜 받았냐고 꾸민다.
그거 그냥 똥 닦는 휴지를 비단천으로 하고는, 고이 모셔놓고 절하는 일에 다름없다.
똥휴지라는 껍데기가 비추는 것이 있다.
위계 권력이라는 똥을 내 몸을 찢어 닦아내고 버려진다는 그 운동성이다.
명품 똥휴지가 기독교가 아니라, 그 피로 만들어진 운동을 내 피로 이어나가는 것이 기독교다.
똥휴지를 손에 쥐어야 하는 이가 누구보다 존중과 감사받을 수 있어서, 그 똥휴지마저도 괜찮을 수 있게 하는 것,
그렇게 나의 지위와 역할이 똥휴지의 지위가 다를 바 없게 하는 것이 기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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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현실에서 기독교는 철저한 위선이고, 기만일지 모른다고 고백한 다음, 바로 그렇게 돌아온 그 현실의 그 기독교로부터 기독교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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