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가능한 신은 소원을 들어준다.
그렇다면 왜 세상엔 신이 없는 것 같은가? 모든 것이 가능한 신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이 가능한 힘을 가진 신은 누구의 소원을 들어주는가?
우리는 돈을 버는 건 결국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다. 그 신은 모든 것이 가능한 힘이 있는 사람의 소원을 우선적으로 들어준다.
그가 가장 충실한 신도이며, 천국이 그의 것이다.
신이 없는 것 같다면, 당신에게 힘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무력한 신은 그저 함께 운다. 함께 웃고, 모두와 함께 춤춘다.
없는 것이나 같은 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력한 신은 어디 있는가?
무력한 신은 누구의 소원을 들어주는가?
우리가 알기로 내 몸에서 아픈 곳이 생기면, 거기가 나의 중심이 된다.
마찬가지다. 그 신은 욕밖에 나오지 않는 막막함 속에 함께, 농성장 같은 막막한 곳에서 같이 욕이나 하고 있다.
다만 세상의 모든 혈관으로 함께 욕한다. 아픔에 마비된 이 지옥을 넘어 나를 향해 우주의 지축을 기울여 이곳으로 달려와 그렇게 울고, 지치고, 막막하고, 같이 있다가, 온 세상으로 같이 밥도 먹고 함께 웃는다.
그래서 내 아픔은 우주적인 것이 되고, 이 아픔을 향해 미래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온 세상과 모든 시간이 여기로 오고 있다.
무력한 신은 언제나, 그렇게 무력하게 옆을 지키는 이들 속에 있다.

자유와 아픔은 동시적이다.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틀어짐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자유가 있으면 아픔은 언제나 발생한다. 천국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때마다 우주의 지축을 기울이며 바로 지금-여기로 다시 재구성된다.
반면에 완벽이 있는 곳에 무슨 아픔이 있겠는가. 그런 곳에도 천국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영원불변한 천국이다.
모든 것이 가능한 신은 자신은 영원불변한 왕좌 위에 앉아 세상을 조작한다.
반면에 무력한 신은 함께 하기 위해 온 우주의 운명을 바꾼다. 지금-여기 우리 함께 무력하다. 함께 존재한다. 죽음도 존재의 끝은 아니다. 함께 생존하거나 함께 애도한다.
여기 모든 것이 새롭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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