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했다.
지금은 언뜻언뜻 올라오는 자해 욕구를 막으면서 누워있는 일 밖에 하지 못한다.
나는 취약함에 노출되어 있고,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글을 남기는 이유는 고통을 전시하거나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 아니다.
고통은 단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남긴다.
이미 고통이 세상에 가득하다. 누군가는 죽어 나가고 있다.

마음 달래면서 편해지고 싶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도, 모든 일은 눈 돌렸던 세상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고통이나 죄책감을 면죄부로 삼고 싶어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것들은 고통을 소비하며 세상에서 눈 돌리는 일들이다.

이 과정은 고통이 이미 세상의 것임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모든 고통이 함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찌르더라도, 고통들은 서로 함께 있다.
그래서 함께 소망한다. 온 세상이 소망한다.

나는 실패했다. 빼앗긴 존재들은 실패했다. 다가올 미래는 실패했다. 나아질 가능성들도 실패했다.
그렇기에 보이는 것이다. 누군가 울고 있음을. 움츠려든 비국민들이 기도를 하고 있음을.
내 고통을 소비하면서 잊고 있었던 진짜 내 고통들을 본다. 우리의 고통들을 본다. 그래서 함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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