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성경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사람을 살린다고 주장하는 것은 생각처럼 의미 있는 일은 아닙니다. 내 해석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셨습니다.


내가 어쩌면 자기주장을 했던 것인지,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올바로 성경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는 어쩌면 그리 구분하기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바로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이뤄지는 세상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선포하고 있는데, 나와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내부의 결속력만 다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타락한 세상의 핍박 속에서 정의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단순히 자기가 속해있는 사회풍조 속에서 자기본위대로 성경을 읽으며 자기를 높일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성경과의 온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선포하니 그 주변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단순히 불쌍한 사람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동일한 마음이 되어 그들의 고통으로 함께 마음이 찢어지는 것도 핵심적인 표징입니다. 그렇기에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치유의 관계 안에서 그들 뿐만 아니라 바로 내가 회복 됩니다. 그렇게 서로 회복이 되어 갑니다. 그렇게 성경은 주체입니다. 성경은 빛입니다.


동성애 논란에서 진정한 핵심은, 내가 얼마나 성경을 잘 해석하고 있는지, 혹은 내가 세상 정의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가 아닙니다.

진정한 핵심은, 내가 정말 동성애자들과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지, 나는 정말 동성애자들의 고통을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지 입니다.

진정한 시대의 지혜는 단순히 판단을 내리고 있는 자리에 있지 아니합니다. 바로 생활 속에서 삶을 함께 하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러하셨습니다.


어둠은 실체가 아닙니다. 어둠은 빛이 들어오면 사라집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타협할 필요없이 어둠인 세상에 침투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눈물이 있는 곳, 아픔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세요. 밖에서 자기 판단의 옳고 그름을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은 고민한다고 어둠이 될 수 없습니다. 눈물이 있는 곳으로 내가 가는 것입니다. 함께 눈물 흘리면서 함께 빛을 불러옵니다. 단순히 시장바닥에서 혼합되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있는 그 안으로 함께 생활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가장 의미 없는 일입니다. 동성애자들의 고통에 침묵하며 살아가는 다수의 동의를 얻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게 똑같은 놈들이라는 취급을 받더라도 죄인이라고 낙인 찍힌 사람, 바로 그 사람, 울분 속에서 힘든 삶을 살게된 억울한 이들,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고, 서로가 위로가 되고, 그것이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침묵하고 있던 다수에게 까지 영향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성경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