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판단할 때, 그 일이 잘못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과, 그가 잘못된 존재라고 판단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일에 대한 판단은 내 가치관이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은 내 가치관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치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여야 한다.

그가 어쩌다 그런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하나의 신비다. 생명을 측정할 수 있겠는가. 그가 그가 된 것은 그런 일이다. 함부로 분석하는 건 경솔한 일이다.

내 가치관으로 보면 그가 잘못된 인간으로 밖에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가진 가치관 속에서도, 그가 찾고 싶어하는 따뜻함을 함께 발견해주고 거기에 반응해 주는 것이다.
그의 안에 있는 온기를 찾아주는 것이다.

그가 잘못된 가치관을 가졌다면, 그는 변명 속에서 진짜 자신을 버려두고 있을 것이다. 그 스스로 진짜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가진 것도 많고, 마음도 좋아 보이더라도, 그런 것은 껍질일 뿐이다. 
진짜 그는 버려졌고, 외롭고, 신음할 것이다. 그가 가진 좋아보이는 껍질 때문에 오히려 진짜 자신은 더 철저히 버려진다.
사실 모두 끔찍한 고통 속에 있다.

그럴 때 내 가치관은 잘못되지 않았으니, 내 가치관대로 따라오면 그 고통이 해결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생명을 조작하는 일과 같다. 그런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음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신이 한 짓이 그런 짓인지도 모르고 상대방이 어리석고, 구제불능이라며 상대방 탓을 한다.

그냥 옆에 있으라. 판단하지 말아라. 
함께 울라. 그가 울지 못하면 대신 울어 주어라.
그가 외롭지 않게 거기에 가 주어라.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잘못 속에 외로운 그 사람 안의 진짜 자신이다.
그리고 나도 좀 잘못된 자리에 함께 서 있어 주면 뭐 어떤가. 나는 쉽게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그를 그 외로움에서 일으켜 세워주는 일이다.

원리는 그러하나 실제로 그런 일은 한다는 것은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힘든 일이다.
그 사람의 논리적 오류, 자기 변명, 비열한 의도가 너무나도 적라나하게 드러난다.
그가 껍질로 두르는 가치관을 더 선명히 파악하는 만큼, 그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더 크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에게 서 주는 것이 그런 그의 완악함을 더 강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 속에 휩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다가가는 나의 선의를 악하게 되돌려 주고, 이용할 것이다.
역겹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제대로 본 것이다.

누군가에게 서주는 일은 그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 일이 좋게 작동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아니 좋게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자기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편함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곳은, 내 기준으로 보는 세상이 아닌 세상 자체를 만나는 곳이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다.
우리들이 여기에 이렇게 만난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비단 나의 생명을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있었는가.
세상 자체를 만나는 곳에서 진짜 나를 만난다. 세상은 나를 품어주고, 나는 세상을 안는다.

그 사람의 편에 서 있는 것이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다.
그래. 다치면 뭐 어떤가. 내 안의 진짜 나는 그런 것쯤은 이길 것이다. 
그의 따뜻함을 발견해주면 반드시 따뜻함이 돌아온다.
진짜 나를 만나는 과정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바로 그 담대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를 일으키는 건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세상의 희생을 먼저 알고, 그에 반응하는 것 뿐.
또한 더 큰 세상을 만나는 건 내가 누군가의 옆에 서 주는 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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