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작고 따뜻한 웅덩이에서 시작했다.
수억의 시간이 지나 우리는 만났다.
하나의 물은 우리라는 다양한 빛깔이 되었다.
그 모든 빛깔이 어울어진 하나의 그림이 우리이다.
우주 안에 작은 보석 알갱이인 지구.
그 안에서 수억의 시간 조차 찰라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지금은 말 그대로 잠깐 스쳐가는 빛이다.
그러나 우리는 만났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웅덩이는 우리라는 모양으로 존재한다.
모든 물이 마르더라도 우리라는 지금은 또한 오로지 지금인 것.
지금 여기는 찰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돌아오지 않을, 영원한 그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웅덩이를 잊었다.
우리는 지구라는 알갱이가 비춘, 돌아오지 않을 하나의 그림임을 잊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고통 속에 있어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한다.
난 사람들이 변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난 사람들이 밉다.
작고 따뜻한 웅덩이는 우리라는 모습으로 존재하는데, 그 작고 따뜻함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 이제 다시 알아차린다.
나 역시 존재하지 않는 웅덩이라는 그림자를 잡고 있었을 뿐, 지금 우리라는 웅덩이의 빛깔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작고 따뜻함은 태초부터 준비되었고 지금 여기가 그것이다.
놓친 것은 나였다. 그 상태가 불신과 미움으로 나타났다.
시편 90편
2015. 12. 9. 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