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평등을 우습게 보지 말아라.세상은 어떤가?
큰 사람이 모든 상자를 다 가진다.
중간 사람에게 대가를 받고 빌려준다.
그 대가는 아마도 중간사람이 작은 사람의 상자를 빼앗아 오는 것과 아예 관계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작은 사람에겐 아무상자도 없다.
[2]
의미 없어 보이는 저 작은 자의 한 상자의 의미는 사실 어마어마한 의미이다.
저 평등이 이상적인 것이라면, 저 정의는 너무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이다.
그런 정의를 외쳐봐라. 그런 말도안되는 이상이 아닌, 현실을 투쟁하는 이들에게 외면당하는 게 당연하다.
비현실적인 정의는 무책임한 분탕질에 다름없다.
이성적 판단, 합리적인 선택은 저 평등을 향한다.
[3]
자. 그런데 가슴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성이니 합리니 다 떠나서 무엇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가?
합리적 선택이란 것이 언뜻 맞는 것 같지만, 어차피 그건 힘 있는 과반수의 입장일 뿐이다.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해봐야, 본심은 중간 사람이 상자를 더 편하게 획득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 평등을 지지해 주는 건 이성이 아니라, 사실은 저 정의에 공감하는 가슴이다.
드러나는 합리라는 걸 지지해 주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이면에 자리잡은 바로 저 정의였다.
[4]
세상은 정의를 외치면 혐오의 대상이 되게 만든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정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보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 미울 수도 있다.
그들의 말하는 그 현실이란 걸 지지해주는 것도,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자신의 이성이 아니라 우리들의 가슴이었다.
그 가슴이 인류를 지켜왔다.
좀 살만해지니 저 지랄들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이 가슴이 사람들을 지킨다.
정의를 외치기만해도 욕먹는다. 욕먹는 건 힘들다.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 더 힘들어 하는 작은 사람이 옆에 있을 것이다. 그의 손을 잡아주려면 나도 작아져야 한다. 그건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손 잡는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누가 그러는가?
아마도 세상은 왜 불가능한지를 잘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우리 가슴이 정의를 원하는지, 그것은 잘 설명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냥 세상은 살만하니 그런 조작을 하고 싶어 하는 거다. 그냥 편하게 자신들이 정의라고 믿고 싶은 거다.
정의를 보는 것.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원이 이뤄져왔고, 인류를 지탱해왔고, 흐르는 강처럼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