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라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구유에 누운 이들이
사실은 신과 같은 존귀한 생명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가 보살펴야 하는 인간 관계가 생겨,
난 지금 이 시간 예배당이란 곳에 있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길 위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신은 오로지 함께 길 위에 있다.

지금 이 시간 많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있다. 
거기만 따뜻한, 길 위와는 단절된 곳에서, 마치 거기만 즐거워할 자격이 있는 것 처럼 하고 있다.
내가 있는 여긴 그런 것을 위해 모인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 마음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신이 사람 모양을 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을 생각하는 날이다.
그런 오늘은 우리가 사람 모양을 하는 걸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하는, 어떤 행동으로 표현될 만큼 깊이 생각해야 하는, 사람 모양의 행동을 하게 되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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