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은 다르다.
‘해도 되는 것’의 문제는 예민하게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쉽게 이에 대한 반성 없이 ‘할 수 있는 것’의 문제만 생각한다.
그러나 반성 없는 ‘할 수 있는 것’은 짐승의 세상이 그 주인이다. 끊임없이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기 위하여, 그것은 차라리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당위를 붙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결국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다. 타인과 세상,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해도 되는 것’의 문제에서는 분별을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해도 되는 것'을 아는 지혜는 자기계발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다른 존재들을 내 몸 처럼 여기게 될 때, 그때에 '해도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알고, 그의 아픔에 대해 같은 위치에서 공감하는 사람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쪽을 고르고 있는 지 가만히 살펴보자.
물론 우린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해야 되는 것'을 선택하도록 자기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런 선택을 통해 내가 무언가 잘못 살고 있는 것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 선택의 자리에서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내 것이라고 쥐고 있는 자신이 있을 것이다. 눈 앞의 선택을 바꾸는 노력이 아니라, 나를 지금과는 다른 삶의 장소로 보내주어야 한다. 공감하고 같이 아프게 되는 자리로 나를 보내주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
오늘 내 안의 탐욕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오늘 동등하게 아픈 자리로 간 한 발짝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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