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그러나 모든 아프리카를 치료할 수는 없다. 그의 손이 닿는 곳에서만 치료할 수 있다.

그가 거기 있었던 거다. 치유받은 사람이 더 노력한 거고, 덜 노력했기에 치유받지 못한 것이 아니다.

자격이 있어서 치유받은 것이 아니다. 치유받지 못한 사람은 악한 사람이어서 자격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손이 닿아 치유된 것의 진짜 의미는, 손이 닿지 않아 치유되지 않은 아픔이다. 그것이 있었기에 치유가 거기에 있을 수 있었다.


우리는 영웅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저 구경한다. 그렇게 치유만을 바라본다.

그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기만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와 우리를 분리한다.

그리고 치유능력이 있는 사람을 내가 소유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곧 소유할 수 있는 자기 능력으로 결론 짓는다.


진정으로 영웅을 대하는 것은, 나머지 치유받지 못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곳에서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그곳으로 손을 얹는다. 몸이 가고, 마주한다.


물론 내 손이 닿는다고 치유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역할은 치유할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는 일일 수도 있다.

결과는 같다. 치유하는 손이나 데려다 주는 손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힘이 필요한 곳에 내 손을 닿게 한다. 닿는 손이 없었던 그 고통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손을 더한다고 같은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그 고통의 자리를 함께 한다.

함께해도 낫지 않는 고통이 있다. 그건 내가 함께하지 않아 낫지 않는 고통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 고통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모를 것이다.

치유가 나의 몫이 아니다. 손을 얹는 것이 나의 몫이다. 치유는 치유가 한다.

다만 고통과 닿아있는 그곳에서 함께 아픔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어딘가로 내 손을 보내고 있다.

나의 모든 일이 안수(按手)임을 깨닫는다.

안수의 참의미는 나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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