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개인이 잘못이며, 개인이 노력하라고 한다. 청춘은 아파야 하며, 그것이 다 경험이며, 잘사는 사람은 노력한 사람이라고 한다.
아픈 건 개인 탓이다. 병원비 대느라 가정의 재정이 재기불능한 상태가 되는 건 그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다.
노동자들, 소수자들, 여성 인권, 억울함을 외치는 사람들은 자기 일도 하지 않고 분노만 쏟아내는 불온한 세력이다.
이 시대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마치 종교적으로 부정한 존재를 대하는 것 같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한다. 노력만큼 얻은 결과라고 한다.
사람들은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를 믿음의 능력이라 자랑하는 것을 보며 손가락질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가진 소유 또한 비정상적인 것임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태양과 땅은 공평하다. 따라서 땀방울만큼만 차이가 나는 것이 정상이다. 지금의 소득격차는 정상적이지 않다. 부당하다. 뭔가 잘못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소외된 자들보다 더 가지게 된 것은, 사회구조적인 결과이며, 그러한 소득격차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회구조는 오히려, 마치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세뇌되어 있는 이상한 종교적 현상에 가깝다.
가졌다는 것의 의미부터가 잘못됐다. 내가 부지런해서 더 가진 것의 의미는, 게으른 자가 힘든 시기에 굶주리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그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하는 건 소득격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굶주렸을 때 도와주는 일을 통해서 이뤄진다.
평범하게 태어난 것도 가진 것이다. 평범함의 의미는, 날 때부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이 태어난 사람과 그 피해를 함께 나눠지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가 자신의 못 가졌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임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만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현실 속에서 허무맹랑한 이야기기 되어 버린다.
두 개의 삶이 있다. 현실을 따르는 삶과 인간을 따르는 삶.
인간을 따르려 하면 언제나 경멸당할 것이다. 뭐 그렇게 까지 할 것이 있는가, 너는 얼마나 잘난 줄 아느냐, 넌 세상이 뭔지 모른다, 그게 무슨 의미라도 있느냐.
물론 인간은 전쟁으로 기근이 있는 시기에 다른 인간까지도 잡아먹을 수도 있는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언제나 다시 돌이키기에 인간이다. 돌이킬 자격도 없는 존재가 돌이킬 수 있게 된다.
현실을 바라보면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다. 그게 자기 자신이다. 자기 허물을 기준으로 살기에, 남을 판단하는 일로 내가 나라는 고통을 전가한다.
반면 인간을 바라보면 돌이킬 수 있다. 그게 인간이다. 자기 허물을 감당하고 조롱을 당한다. 삶을 견디며 다음 사람을 일으킨다.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세상이 변해야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인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을 향하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마약 같은, 사이비 종교와 같은 현실 세상이다. 인간을 살아내는 일은 정신 나간 일이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 맞다. 영원히 잃을 것이다. 소외된 자들과 같아질 것이다. 다만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하여 누군가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하는 곳으로 간다. 바로 그 회복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나부터 회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겨우 그런 차이다. 누가 더 도덕적인지, 누가 더 지혜로운지, 누가 더 의지력이 강한지의 문제가 아니다. 절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오늘 소유를 얘기하고, 인간을 얘기했지만, 결국은 회복이다.
회복이 있는 사람이 남을 회복하는 자리에도 있을 수 있다.
지금 남을 회복하는 자리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을 뿐이다.
회복이 되려면 회복이 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함이 맞다.
소유의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소외의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회복이 그 일을 할 것이다.
오늘 나는 진정 나의 회복을 위해 타협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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