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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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피해자에게 참으라, 잊으라고 하는 사회입니다.


용서와 희생이란 말은 절대 형식적으로 사용되어선 안되는 말입니다.


피해 당하는 편에 선다는 건 억울한 일입니다. 그냥 표현이 아니라 실제 속이 썩어들어가고, 정신이 무너지며, 토할만큼 억울한 일입니다. 

그런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면 당신의 인격이 훌륭해서 용서와 희생을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당신이 진짜 억울한 상황 속에 있는 게 아닐 뿐입니다. 위선적인 얘기나 하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

분명 내 속에서는 그런 고통을 견딜 충분한 힘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손해보는 일 못할까요?

충분한 힘이 없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못해낼까요?


이 헬조선에서 우린 전쟁나면 다 이민 갈 꺼 같고, 다 나라 팔아먹는 쪽에 서 있을 꺼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이 나면 그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우리는 비겁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의병도 있었으며, 독립운동가도 나왔습니다.

사회는 우리가 스스로를 위선과 비겁의 가면에 숨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믿고 있는 근거는, 사실 겨우 '나의 확신'이란 거 정도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그렇다', '내가 그렇다'라며 자조합니다. 그걸로 안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건 내 이기심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기 보다는, 어쩌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먼저 겁을 먹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잘모르지만 고통이 함께 할 것만 알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어차피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가 옆에 서주었던 사람이 변하고,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갈 것입니다.

분명 그 과정은 철저히 외면 당하고, 조롱당하고, 토할만큼 억울할 것입니다.


억울함이 아무렇지 않다면 진짜가 아닙니다. 그 고통의 크기 만큼이 진짜 입니다.

위선적인 용서와 희생이 아니라, 내가 억울한 편에 함께 함으로써 겪게 되는, 수명이 줄어들 정도의 억울함과 신음이 진짜 용서와 희생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쩌면 위선적인 거짓된 용서와 희생만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용서와 사랑은 두렵지만 가슴을 뛰게 합니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입니다. 괜찮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안에 있다고 진짜 용서와 사랑의 자리로 오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위선만 경험하여 지치고 포기하게 된 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게 정상입니다. 괜찮습니다.

진짜를 경험하는 건 두려운 일입니다. 분명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진짜의 자리로 가면 생각보다 우리는 지쳐 포기하지는 않고 있을 것입니다.

내 속에 충분한 힘은 없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진짜인 그 자리에서 만납니다.


밖으로 나오세요. 사람들을 만납시다.

그리고 자기의 얘기들을 나눕시다.

위선이 아닌 진짜인 무용담들, 혹은 실패담들, 그동안 용기내지 못해본 일들을 나눕시다.

같이 억울하고, 같이 화도 내고, 같이 울고 웃고, 삼천포로도 좀 빠지구요.


그 자리에 함께 갑시다.

저도 그 자리에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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