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나의 내부를 아프게 한다. 그러나 월경이나 임신 같이 병이 아니어도 아픔을 주는 일이 있다.
악한 마음과 악한 행동은 나의 외부를 아프게 한다. 또한 육체적인 문제처럼 주기적으로 악한 마음이 생겨나서 주변으로 아픔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나의 내부를 아프게 하는 거나 외부를 아프게 하는 건 사실 그리 다른 게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아프게 된 거다. 아프게 하는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죄는 죄다. 내 몸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있는 것 처럼,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일이 있다.
내 삶을 힘들게 하는 정도에 따라 회복을 위한 시간이 전치 2주일 수도 전치 6주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주변의 삶을 힘들게 한 정도만큼 더 큰 회복이 필요해 진다. 주변을 아프게 한 그가 그만큼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비도덕적인 일을 한 사람들을 보며 인간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절대선이라는 절대적 잣대로 인간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무한이란 시간 앞에 장수하는 사람이나 요절한 사람의 삶의 길이엔 차이가 없듯, 도덕적 우월함에 따라 더 높은 등급의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 그저 사람이다.
그저 더 큰 아픔이 있는 곳에 더 큰 치유가 있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잠깐 악한 마음을 품는, 혹은 주기적으로 악한 마음이 생겨나는 이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병이 걸렸다고 그 사람의 사람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신의 병, 도덕의 병이 걸렸다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병이 있는 상태이지, 그가 그라는 신비함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큰 병에 걸렸어도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의 생명에 경탄하듯, 큰 마음의 병이 걸린 사람에게도 경탄을 가질 수 있다. 그 인식이 먼저 있어야 단순히 벌을 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가 회복을 만들어낼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그런 인식이 쉽지 않은 건 내가 속이 좁아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러하다.
노동자는 위험한 일에 노출되고 암에 걸리고 병이나면 부품처럼 교환된다. 암에 걸린 것도 그의 죄라고 한다.
임신과 출산은 그 사람을 통해 생겨나는 일이지만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휴가 후에는 퇴직을 해야한다.
그런 세상이니 마음의 병을 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한 건 아니니 죄를 지은 사람에게 잔인한 사회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건 처단이 아니라 회복을 돕는 일임을 기억한다. 그가 내부를 아프게 하는 상황에 있다면 내부를 치유하도록 돕고, 그가 외부를 아프게 하는 상황에 있다면 외부를 치유하도록 돕는 일이다. 아픔이 있는 것이다. 그의 존재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늘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나는 내가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는 변명할 것이다. 그 앞에서 단순히 처단이 아닌 치유의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사람이다.
그것이 이 잔인한 세상을 한발짝 사람다움으로 물들일 것이다.
악한 마음과 악한 행동은 나의 외부를 아프게 한다. 또한 육체적인 문제처럼 주기적으로 악한 마음이 생겨나서 주변으로 아픔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나의 내부를 아프게 하는 거나 외부를 아프게 하는 건 사실 그리 다른 게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아프게 된 거다. 아프게 하는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죄는 죄다. 내 몸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있는 것 처럼,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일이 있다.
내 삶을 힘들게 하는 정도에 따라 회복을 위한 시간이 전치 2주일 수도 전치 6주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주변의 삶을 힘들게 한 정도만큼 더 큰 회복이 필요해 진다. 주변을 아프게 한 그가 그만큼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비도덕적인 일을 한 사람들을 보며 인간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절대선이라는 절대적 잣대로 인간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무한이란 시간 앞에 장수하는 사람이나 요절한 사람의 삶의 길이엔 차이가 없듯, 도덕적 우월함에 따라 더 높은 등급의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 그저 사람이다.
그저 더 큰 아픔이 있는 곳에 더 큰 치유가 있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잠깐 악한 마음을 품는, 혹은 주기적으로 악한 마음이 생겨나는 이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병이 걸렸다고 그 사람의 사람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신의 병, 도덕의 병이 걸렸다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병이 있는 상태이지, 그가 그라는 신비함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큰 병에 걸렸어도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의 생명에 경탄하듯, 큰 마음의 병이 걸린 사람에게도 경탄을 가질 수 있다. 그 인식이 먼저 있어야 단순히 벌을 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가 회복을 만들어낼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그런 인식이 쉽지 않은 건 내가 속이 좁아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러하다.
노동자는 위험한 일에 노출되고 암에 걸리고 병이나면 부품처럼 교환된다. 암에 걸린 것도 그의 죄라고 한다.
임신과 출산은 그 사람을 통해 생겨나는 일이지만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휴가 후에는 퇴직을 해야한다.
그런 세상이니 마음의 병을 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한 건 아니니 죄를 지은 사람에게 잔인한 사회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건 처단이 아니라 회복을 돕는 일임을 기억한다. 그가 내부를 아프게 하는 상황에 있다면 내부를 치유하도록 돕고, 그가 외부를 아프게 하는 상황에 있다면 외부를 치유하도록 돕는 일이다. 아픔이 있는 것이다. 그의 존재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늘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나는 내가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는 변명할 것이다. 그 앞에서 단순히 처단이 아닌 치유의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사람이다.
그것이 이 잔인한 세상을 한발짝 사람다움으로 물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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