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영향 속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판단이 정말 성경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풍조에 기반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쉽게 느껴지는 것과 달리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그 분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오히려 성경을 쓴 이는 그러한 분별을 원하실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러한 분별을 위해 시대에 주어지는 지혜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해가 움직이는 것을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시편 19:5-6). 천동설의 시대엔 성경에 쓰여 있는 구절이 천동설을 표현한다고 믿고 있더라도 성경을 잘못 읽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 관련된 분별이 필요했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체의 비밀이 밝혀지는 시대에는 그에 맞춰 필요한 지혜가 주어졌습니다. 이때 지동설의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성경에는 문자 그대로 천동설이 맞다고 써 있다며 핍박하는 것은, 사실은 성경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사회풍조를 따른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라는 말이 존재합니다만 성경의 본 뜻을 아는 일은, 자기 느낌에 따라 경솔하게 이뤄져서는 안될 일입니다. 성경에는 문자적으로 여성의 열등함을 표현하거나, 노예제를 찬성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기 느낌으로 성경을 읽은 것일 뿐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들의 주장과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이 읽는 사람에 따라 마음대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애초에 천동설이 아니었으며, 차별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내가 주체가 되어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주체이며, 나에게는 다만 시대에 맞춰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렇듯 성경의 이해와 적용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강이 흐르듯 시대는 변합니다. 성경은 언어의 분화가 부족한 고대 문자로 쓰여 졌으며, 제한된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 졌습니다. 그로인해 파생되는 비본질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요. 예수님과 사도들이야말로 구약으로 주장되어지는 여러 규례의 비본질성을 지적하곤 하셨습니다. 흐르는 시대 속에서 그 본래의 의미가 지켜지도록, 시대에 주어지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 성경은 살아있습니다. 성경의 본질은 오직 하나이며, 어떤 시대에라도 언제나 온전하며, 동일한 빛을 비춥니다.


우리는 성경이 문자 그대로 여성의 열등함을 말하거나 노예제를 지지한다고 모함하는 이들에게, 해석을 붙여 성경의 본 뜻을 밝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의적인 성경 해석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대에 주어지는 지혜인지 혹은 자의적 해석은 아니었는지를 분별하기 위해, 우리는 시대에 주어지는 지혜가 가진 중요한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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