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예수가 당하셨던 것처럼, 시대에 주어지는 지혜는 종종 사회풍조에 의해 핍박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엔 사회풍조가 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지혜는 사실에 근거하며, 사실이란 것은 결국에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에 근거한다는 것은 중요한 지표입니다. 세상의 원리를 지은 존재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가 지은 원리와 상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회풍조를 따르는 이들은 사실을 조작합니다. 여성이 왜 열등한지, 다른 인종이나 민족이 왜 열등한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들이 나왔습니다. 또한 종종 원인과 결과를 바꿔서 해석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약탈로 인해 존엄성을 잃고 끔찍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그렇게 밖에 생활하지 못하는 열등한 존재들이니 자신들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식이지요.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에 부합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주장을 부정하면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성경 문구들을 도구로 쓴 그의 주장은, 성경이 아닌 사회풍조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주장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일은, 세상의 원리를 주관하는 존재보다도 사회풍조와 자기 자신을 더 높이 두는 일입니다. 이것이 자기와 타인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비극들을 우리는 지켜봐 왔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더 높이 두는 것을 불경이라고 하며, 불경이 초래하는 불행을 보면 왜 불경을 가장 큰 죄라고 하는지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의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사실에 대해 그가 보이는 태도가 어떠한 지를 보면, 그의 주장이 시대에 주어지는 지혜에 기반한 것인지, 사회풍조에 기반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성혐오에 대한 사실 관계를 예를 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낚시가 물고기를 낚는 것과 사람을 속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처럼, 혐오란 용어도 다른 두 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혐오감을 뜻하며, 다른 하나는 인종혐오와 같은 사회구조적인 혐오를 뜻합니다. 여자를 좋아한다는 개인 감정과 별도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사회구조적인 여성혐오가 원인입니다. 한편으로, 개인적인 혐오감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예를들자면 뱀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뱀자체에 갖는 혐오감은 아니지만, 모든 뱀이 독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뱀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혐오 사회 때문에, 남성자체에 대한 혐오가 아니더라도 남성에 대한 개인적 혐오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개인적인 혐오감은 선재하는 여성혐오 사회가 원인임에도, 마치 남성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하고 있어서 이런 혐오가 생겨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곤 합니다. 이는 여성혐오를 하는 사람에게나 자연스러운 논리일 뿐, 사실에 부합하지는 주장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사회구조적 혐오인 여성혐오와 개인적 혐오감인 남성 혐오는 애초에 다른 혐오의 개념이므로 대립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동등한 반대 개념으로써 대립되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사회풍조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실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시대에 주어지는 지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이 익숙한 사회풍조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문화가 만든 우상이 오히려 진실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인권의식의 향상으로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의식이 시대에 주어지는 지혜와 동일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인권의식 또한 일종의 사회풍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권이 참 인권입니다. 차별 당하게 된 이들의 위치에 함께 하는 것은 성경적인 것입니다만, 그것은 성경을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동성애와 관련된 성경 해석의 문제 또한 동성애에 대한 사회 분위기 또는 동정심에 편승해서 이뤄지는 작업이 아닙니다. 다만 기존 사회풍조에서의 가치판단이 아니라 사실이 무엇인지를 점검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밝혀진 사실들은, 성경이 제멋대로 해석되지 않고 온전한 빛을 비추도록 이 시대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어떤 이들은 문자 그대로 동성애자의 존재와 성경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태도는 성경이 혐오를 담은 책이라고 모함하기 위해서도 쓰여지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구절들이 사실과 상충되지 않는다면 성경에 쓰여진 것은 차별이나 혐오가 아닙니다. 성경을 지은 분이 세상을 지은 분이라면, 성경이 담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입장은, 동성애에 대한 사실과 상충될 수 없습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성경에서 언급한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주장을 하기위해서 시대상황을 얘기하고 원어를 해석하며 그럴 듯한 설명을 붙이지만 그것이 성경 전체의 의도를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자의적인 해석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어떤 주장이 사회풍조나 자의적 해석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세상의 사실과 더불어 성경의 사실을 왜곡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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