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가장 많은 진실을 알게 된 사회입니다. 이중 동성애에 관련된 이슈는 성소수자에 관련된 주된 이슈이긴 하지만, 여러 이슈 중 일부일 뿐이기도 합니다(*참고 : 성소수자 속 동성애의 위치 이해하기 http://entolre.tistory.com/213). '성소수자 =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기록된 것은 남성 간의 성관계에 관한 언급이며, 이 글의 목적이 성경적인 분별이기 때문에, 주된 논의는 동성애를 중심으로 이끌고 가게 되었습니다. 


동성애에 관련된 유전자가 있더라도 동성 사이에서는 자손이 생기지 않으므로 결국 없어졌을 것이라며 동성애는 선천적일 수 없고 학습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된 유전자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유전자와 관련된 일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닙니다. 성격에 관련된 유전자만 해도 밝혀진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요.

동성 간 성관계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에게서도 꾸준히 발견되고 있으며, 따라서 단순히 학습한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동물에서 나타나는 동성 간 성관계는 영장류에서 뿐 아니라, 다른 포유류, 조류나 곤충에 이르기까지 성을 가진 동물 전반에서 종종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동물행동 연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1999년까지의 연구에서만 해도 무려 470종 이상의 종에서 동성 간 성관계가 보고되었었는데, 2006년에는 1천 500여종에서 보고되면서, 동물에서 동성 간 성관계는 점점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랑과 성행위가 같은 개념이 아닌 것처럼 동성애와 동성 간 성행위가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동성 간 성관계를 보이는 종들이 동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성지향, 곧 동성애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동물들이 창조섭리를 역행하기 위해서 동성 간 성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듯, 인간에게 동성애가 나타나는 것은 생물학적 현상, 곧 배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동성애가 특별히 도덕적 문란으로 증가한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동성애가 문란함을 증가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전자적으로 내재된 확률의 문제는 도덕의 타락에 따라 더 높은 확률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건전하다고 그 유전자적 확률이 줄어들거나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동성애는 동성 간 성관계와 동일한 개념이 아니며, 단지 동성애 대한 성지향입니다. 일반적인 성지향인 이성애가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라면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문란할 뿐입니다. 동성애가 사회의 문란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란함이 동성애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동성 간 성관계가 많은 것과 동성애자가 많은 것은 다른 개념입니다.


몇몇 동성애자들에게서는 어렸을 때의 외로움이나 정신적인 충격이나 성폭행 등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를 보고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후천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 고쳐야 하는 문제라는 것과 동일한 개념은 아닙니다. 어쩌면 어렸을 때 발생한 사건 때문에 단지 더 빨리 자신의 성지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동성애자의 비율이 더 많은 나라를 두고 후천적인 판단 또한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동성애와 관련된 유전자 풀(gene pool)이 많을 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억압이 없는 환경에서 현 인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동성애자의 비율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동성애라는 성지향이 결정되는 것이 100% 선천적으로만 결정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100% 후천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후천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야 사실에 부합하는 판단이 될 수 있습니다.
동성애 혐오가 드러나는 사회에서 어떤 정신적 충격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가정에서, 다른 성소수자와 대면하지 않고서도, 본인의 성지향이 동성애임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정하려고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 곧, 동성애 혐오의 사회 속에서 '후천적'이라는 뜻은, 동성애를 후천적으로 배운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래의 성지향이 차별에 의해 억압되는 경우를 뜻합니다. 그런 경우 동성애의 성지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부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선천적, 곧 유전적인 요소가 있다는 말이 가치중립적이라는 뜻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이기심같은 어떤 기질을 갖는 것 또한 유전적인 문제이기도 하며, 곧 생물학적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 이기심 자체는 도덕적으로 악한 것입니다.
동성애가 생물학적 현상이더라도, 만약 성경에 동성애가 악한 것으로 써 있다면 성경적으로 동성애는 악입니다. 성경을 주신 존재가 세상을 지은 존재라면 그 둘은 상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만약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 동성애 자체라기보다 '악한 동성 간 성관계'라면 그건 동성애가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동성애가 아니라 '악한 동성 간 성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악한 이성 간 성관계'가 나옵니다. 그것과 이성애가 동일한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악에 대한 문제에 인과관계를 혼동해선 안됩니다.

동성애에 대한 판단은 문화적 가치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동성애가 부정적인 문화가 있고 아닌 문화가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인 판단에 있어서, 사회풍조에 근거하여 성경 구절을 역으로 해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인과관계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지동설은 신성모독이다 = 성경이 말하는 것이 천동설이기 때문이다”라는 오류는 성경 문자 그대로를 사용해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과는 맞지 않습니다. 천동설의 사회풍조에 근거해 인과관계를 혼동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회풍조 속에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성경해석에 영향을 미칩니다. 주장의 정당성을 분별하기 위해 먼저 지동설에 대한 사실을 정리해 온 것 처럼, 동성애와 관련된 사실을 정리해보는 지금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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