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남보다 정의롭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이런 대우나 받고 살아야 하는가.
절제하고 부지런히 살고 있는데 왜 나답게 살 조금의 숨통조차 허락받지 못하는가.
사기나 강도짓을 하지도 않으며, 법을 어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악법에 대항하면서도 죄책감을 잃지도 않는다. 나는 모함당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모든 인간이 놓여있는 상태다.
바로 내가 사실은 수치의 감각을 잃고, 자기들의 몸을 방탕에 내맡기고, 탐욕을 부리며, 모든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들고가서 신에게 욕을하며 싸우라.
쾌락으로, 분노로, 죄의식의 고통으로 나라는 고통을 피하고 있는 내가 있다. 애초에 나라는 고통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탐진치의 삼독과 싸우는 고삐를 내가 쥐고 있지 말고 신에게 쥐어주라.
그렇게 할때 나라는 그 굴레 밖 세상에서 나라는 고통을 나눌 길이 이미 놓여져 있음을 깨닫는다.
나라는 고통은 타존재를 희생하며 위로받는다. 그러나 내가 나라는 고통을 회피할 때 더욱 크게 타존재를 파괴한다.
고통은 여전하다. 다만 타존재에 의해 안겨 있음을 알 때, 고통에 찢겨진 그 자리에 자비가 피어난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지금 삼독 안에 놓여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자유로운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럽지 않은 이들에게 선포할 수 있고, 고통스러운 이들을 위해 슬퍼할 수 있다.
절제하고 부지런히 살고 있는데 왜 나답게 살 조금의 숨통조차 허락받지 못하는가.
사기나 강도짓을 하지도 않으며, 법을 어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악법에 대항하면서도 죄책감을 잃지도 않는다. 나는 모함당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모든 인간이 놓여있는 상태다.
바로 내가 사실은 수치의 감각을 잃고, 자기들의 몸을 방탕에 내맡기고, 탐욕을 부리며, 모든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들고가서 신에게 욕을하며 싸우라.
쾌락으로, 분노로, 죄의식의 고통으로 나라는 고통을 피하고 있는 내가 있다. 애초에 나라는 고통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탐진치의 삼독과 싸우는 고삐를 내가 쥐고 있지 말고 신에게 쥐어주라.
그렇게 할때 나라는 그 굴레 밖 세상에서 나라는 고통을 나눌 길이 이미 놓여져 있음을 깨닫는다.
나라는 고통은 타존재를 희생하며 위로받는다. 그러나 내가 나라는 고통을 회피할 때 더욱 크게 타존재를 파괴한다.
고통은 여전하다. 다만 타존재에 의해 안겨 있음을 알 때, 고통에 찢겨진 그 자리에 자비가 피어난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지금 삼독 안에 놓여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자유로운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럽지 않은 이들에게 선포할 수 있고, 고통스러운 이들을 위해 슬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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