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명상은 신비이며 초월이다.
그 구도의 길을 포기하면 세계의 폭력에 굴복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는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을 세계 속으로 집어던진다. 혹은 굴복할 수 있는 사람을 신비로 잡아당긴다.
신은 없다. 신을 저주한다. 원망하고 분노하고 낙담한다. 그런데도 초월로 가지도 않고, 세계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기독교의 신이 있는 곳은 그곳이다.
초월이라는 자기 능력을 써볼 여유도 없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곳. 그렇다고 나도 세계와 똑같아 지면 편할텐데, 도저히 그렇게 되어지지 못하는 곳.
이기적인 사람들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이기적이지만 단지 더 힘이 없을 뿐인 나와 사람들이 얼싸안게 되는 곳.
분명 신이 없어야 말이 되는 일인데, 내가 원하는 거 들어주는 게 신이 아닌데, 그럼에도 여전히 기도가 멈추지 않는 곳. 그래서 신에 대한 미움이 멈추지 않는 곳. 다시 기도가 멈추지 않는 곳. 다시.

우리는 영원히 우는 자와 함께 울 것이다. 함께 웃을 것이다. 얼싸안고 노래하고 춤을 출 것이다. 증오는 악한 것이기에, 악에 받힌 그 증오를 함께 걸어갈 것이다.
그 끝이 보이지는 않아도 그저 함께 걷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은 그 도달점이나 세계의 해답에 있지 않다. 오직 함께 걷는 그 걸음 속에만 있다.
기독교의 신은 그래서 무좀균 가득 발냄새 나고 구멍난 그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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