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동물권 활동은,
"인간이 동물을 돕는다"는 개념을 강화시켜왔다고 생각한다.
"같은 동물로서 인간 동물은 인간의 일을 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 동물의 일을 한다"는 것의 특징은 단순히 고발과 시설 보호를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중심은 고통당하는 비인간 동물이지만, 우리의 "동물되기"는 "인간동물되기"다.
억압과 고통의 구조에 저항하고 연대한다.

단지 동물을 도와주는 것은 "인간되기"에 가깝다.
한편 인간 초월적 정의만을 말하는 것은 단지 "자기 확장"에 가깝다.
격리하고 분리시키는 사회에서, 악한 소수나 정의로운 소수의 문제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격리와 분리를 넘어 사람의 일상으로 들어오게 하는 행동이 인간 동물의 일이다.

이것은 예수의 실천방식으로 이해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내 몸이 비인간 동물의 공간에 있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의 공간에서 비인간 동물의 위치에 가까워 지는 것이다.
내 몸이 농장과 도살장에 찾아가고, 그 농장과 도살장을 일상으로 불러오는 것이다.
이는 정의나 불의를 말하는 행동과 다르다. 권력자들의 규칙을 벗어나니 내 존재는 불법화되고 격리된다.
권력의 유지를 위해 제사로 희생되는 동물과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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