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통이 보이지도 않게 대상화 되고 단절되는 고통
- 그 고통을 만나면 나오게 되는 반응은 죄책감이 아니라 분노다.
진보적 해체니 대안이니 그러는 게 아니라, 지금 멀쩡히 잘 굴러가고 있는 걸, 정상이라 이름 붙인 걸, 내 앞에 부서지는 존재와 함께 그저 부숴지게 하는 것이다.

2. 스스로를 완전히 놓치는 고통
- 그게 신이다. 그러니까 앞의 고통으로 저기 고함지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니 정신 나갔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저기 스스로 놓치는 그 주님 보는 것이다.

3. 그래서 욕설을 해대는 그 옆에 버티고 있는 누군가가 없는 고통
- 욕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어서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해결될 수 없음을 같이 경험하는 이들이 없는 것이 더 힘든 것이다.
그 옆에 서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옆에 서는 일조차 실패한다는 것이 그 원형이다.
그러니 더욱 포기되어질 수 없고 언제나 다시 소망한다.

그러니 옆에 있는 누군가는 기적이다.
그것이 진짜 기적이라면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의 옆에 있을 것이다.
사이 예배 공동체는 누구의 옆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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