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핑계를 대었다. “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신이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흑인)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
신이 (흑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네가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평생토록 배로 기어다니고, 흙을 먹어야 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세기 3:12-15)
사악한 뱀이라는 대상화와 그에 대한 차별의 정당화는, 대상화되는 다른 존재들을 (뱀)의 자리에 넣으므로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이 유혹자라는 이야기 구성 역시 당시 가부장제가 만든 차별구조를 반영한다.
곧 우리가 어떻게 차별을 정당화 하는지를 나타낸다.
- (흑인) = (뱀)이라는 대상화
- 선악과 = 가부장적 신처럼 자기를 중심으로 선악을 판결하는 권력
- 타자가 여자에게 선악과를 권함 = 백인들만의 선악 판결은 잘못된 것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호소, 이에 타자화 되던 여성이 반응함
- 신 = 가부장적 권력의 이해
- 선악과의 결과 = 가부장제 아래에서 위계의 정당화
갈등의 이유를 약자에게 돌린다. 차별이 어쩔 수 없는 정의로 포장된다. 바로 인류사의 끝없는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신이 히브리어로 말을 했겠는가? 그렇다면 세계 언어의 기준은 히브리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애초에 본문 그대로가 신의 말씀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류없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성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선악과와 같은 위계적 권력일 뿐이다.
'고요한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 7:6) 우리는 여기 있다 (0) | 2021.06.23 |
---|---|
미래는 지금이 만들어 간다 (0) | 2021.06.10 |
(이사야 59:1-8) 우리는 독사이고 거미다 (0) | 2021.06.04 |
살처분 십자가 (0) | 2021.05.30 |
기후위기에서의 종교 (0) | 2021.05.30 |